'★ 보컬트레이너/→ 텍스트강의'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9.01.19 나의 실용음악 입시 경험담 4
  2. 2009.01.19 나의 실용음악 입시 경험담 3
  3. 2009.01.19 나의 실용음악 입시 경험담 2
  4. 2009.01.18 나의 실용음악 입시 경험담 1

[지난줄거리]

천재 미소년 락커 종욱군은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드디어 입시시즌을 맞게 되는데..

My Story - 4

이른 봄에 씨앗을 뿌린 농부의 심정으로
2개월간의 입시준비를 끝내고 결국 입시장에 들어서게 된 나.

입시번호는 6번.
아침10시부터 실기시험이었기 때문에..
한명당 10분의 시간을 준다 치고...대략 11시경엔 노래를 불러야 했다.

노래를 불러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아침부터 노래 부른다는 것은 정말 고역이다.
잠자는 동안 온갖 먼지들에 노출된 기관지등이 제 기능을 찾는데엔
적어도 10시간 이상의 활동이 필요하기 때문.

그래도 어쩌겠는가?
하찮은 입시생 한명의 불평따윈 씨도 안먹힐텐데...

그래서 결정한것이..
새벽 일찍 일어나서 몸을 되도록 많이 움직이는 전략.

그날의 행적을 쫓아보면 대략 이렇다.

새벽 4:30분 기상.
상쾌한 기분을 유지하기 위해
뜨거운 물로 샤워하며 룰루랄라 거리기.

아침 5:30분 아침식사.
어머니가 특별히 신경써주신 식단이 아들을 감격시킴.

아침 6:00분 명상.
옴~~~~~~~

아침 7:00분 마무리.
시창 청음의 마무리 연습. 피아노 입시곡 연주.

아침 7:30분 부모님과 함께 출발.
극구 만류하는데에도 부모님들은 기어코 입시장까지 태워주셨다.
서울예대는 그 당시 남산에 있었다.(현재 안산 캠퍼스로 이전)
명동입구에서 조금만 남산쪽으로 올라가면 되었지만..
일찍 가봤자..학교에서 연습은 힘들었기에..
남산 공원으로 향했다.
어차피 노래는 몸이 최상의 상태를 유지해야 제대로 나온다.
최상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적당한 스트레칭과 깊은 호흡의 반복적 훈련이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은 할아버지들과 배드민턴 치기;;
그다지 격렬하지 않으면서 은근히 호흡도 가빠지는
이 운동이야 말로 합격기원 운동으로서는 효과만점;

나중엔 의외로 스코어에 연연하는 뻔뻔함을 보이기도;;;
(노인들 상대로 뭘 어쩌겠다는 것이냐?)

어찌되었건 실시장 입장시간까지 이리저리 놀면서 커피도 마시고
간식도 먹고;; 비둘기랑 대화도 하고;; 배드민턴도 치고..;;
(뭐야...뭘 이렇게 많이 한거야? 아침부터..-_ㅜ)

아침 9:30분 실기장 입장
부모님의 응원을 뒤로한채 실기장으로 들어간 나.
주변을 살펴보니 전부 한가닥 할 것처럼 생긴 녀석들이 바글거린다.
정장을 입고 온것은 나 하나뿐;;
전부 캐쥬얼 일색...
정말이지 그 때 뭔 생각으로 정장을 입고 갔는지 모르겠다.
남들이 봤을땐 아마 결혼식장 들어가는 새신랑으로 보였을듯;

아침 11시 경 실기테스트 시작.
떨리는 마음으로 강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동랑예술제 예선전을 치뤘던 곳이기에 그나마 익숙해서 다행.
내가 입시곡으로 준비한 곡은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이었다.
당시 대박 떴던 노래이기도 하고 그다지 높지 않은 음역대여서
편안하게 골랐었다.
반주는 김윤아 라고 나 피아노 가르쳐줬던 누나가 해줌.

[여기서 잠시고백-1]
지금에서야 고백하지만..
나 이 누나 짝사랑했었다. 얼굴 예쁘고 몸매좋고..
이 누나도 날 좋아했던 것같다.(여러가지 정황으로 볼때..)
그렇지만 그당시는 지금처럼 자유연애가 보장되던
시대 상황이 아니었다구..
한살은 요즘 연상으로 치지도 않지만...
그 당시 기준으로 보면 거의 패륜;;;;;
썅...난 시대의 희생자였던게야!!!
"누나 사랑했었어" 왠지 스티브 유의 노래제목이 연상되지만..
진심이었답니다. 흑... ㅜㅜ 다시 보고싶다.

노래를 부르기전 실기실에 들어와 있던 조교가
교수님들을 향해서 한마디 던져줬다.
"이번 입시생은 저번 동랑예술제에서
그룹사운드 대상 받은 친구입니다"

교수들은 고개만 끄덕끄덕;; - 왠지 불안해지는 기분;

어쨌거나 노래시작.

아앗!! 실수다!! 실수다...
고음에서 소리가 뒤집어져 버렸다.
아침이잖아. 아침.. 될대로 되라지..샤우팅으로 질러버렸다! 봵!

어찌 되었건 그거 하나 빼곤 무사히 끝났다.
그리고 남은 시험은 그 어렵다는 피아노와 시창, 청음 -_-;

-To be Continue
Posted by 선종욱
,
몇회에 걸쳐 제가 서울예대 실용음악과에 진학하게된 동기와 실기경험담등을 올려드릴 생각 입니다.
요즘 한참 입시준비에 여념 없으실텐데..(몇몇 학교는 이미 실기 들어갔고!)
조금의 도움이라도 될 수 있다면 좋겠군요.
가급적 1편부터 보시길 바랍니다.

그럼 본문으로 고고싱!

[지난줄거리]

천재락커 종욱군은 기타와 만나 밴드를 조직하고
서울예대에서 주최한 동랑예술제에 참가하게 되고...
아...귀찮어..귀찮어...나머지는 찾아서 읽어봐여!!!! 흥!

My Story 3

서울예전에서 날아온 소식..
입학특전은 개뻥이었다는 한마디...(>쿵
한마디로 아이들 가슴에 대못을 박은 것이었다.
썅! 이게 뭐야....

우린 갖은 고생을 하며 그 자리까지 올라갔는데..
(정말 하루에 6시간씩 피같은 돈 줘가며 합주실에서 똑같은 곡 지겹게 연습했다.)

자기네도 알고보니 연극과에만 해당되는 사항이란다.
그당시 실용음악과는 국악과에서 갈려나온지 갓 1년이 되는 해였다.(국내최초로 개설된 학과였음)
내가 입학하면 실용음악과 2기가 되는 셈이다.

상황이 그러다보니..학교에서의 입김이 작았고..
처음부터 확답을 안주다가 학교내에서의 논의끝에 입학특전을 주지 않기로 결정했단다.

정말 힘빠지고 화나고 열받고...뚜껑열리고...
그래서 따지러 실용음악과 과사무실로 갔다.

우리밴드 일동 : 아! 씨바!!! 이런법이 어딨어! 1등하면 그냥 합격이라매? 앙!
약간 쫀 조교 : 미안해.....

우리는 분을 참지 못하고 사무실의 집기와 기물을 모조리 부수고..난동을 피웠으며..
책상위의 악보들과 악기들을 모조리 마당에 끌어내서 불태웠고...
조교의 목을 질질 끌고 다니다가 기둥에 매달아버렸다....

라고...이야기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우리가 제아무리 양아치에 앞뒤 안가리는 락커라 해도..
그정도 씁새들은 아니었다.

대신 조교의 이런 위로를 들을 수 있었다.

"만약 너희가 입시를 치른다면..실기시험때 플러스 되는 점수가 있을 것이다."

씨바...시험이고 나발이고...
난 여태 음악점수 60점 넘은적도 없고..
계이름도 못보며...
피아노를 한번도 쳐본적이 없었다.

만약 내가 이 학교의 실용음악과를 지원하려면 어떤 공부를 했어야 할까?

(89학번 기준)
입시곡으로 가요나 팝중에서 1곡을 불러야하고..
화성학 온음계적 전조까지 숙련된 솜씨로 풀어내야 하며..
주어지는 악보를 정확한 음높이로 부르고
피아노로 연주하는 멜로디를 악보에 받아 적어야 하며..
피아노 체르니 30번중에서 두곡을 똑부러지게 연주해야 한다.

(주.1)
자 입시를 치른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어버리지 않고 악보없이 연주 할 수 있는 유일한 곡.
체르니 30번 중 토나올때까지 연습했던 곡 28번 직접 연주해 올려 드립니다.
들어보시고 과연 이게 초심자가 연주 가능한 곡이 었을지 판단 부탁 드립니다.



씨바! 씨바! 씨바!
이게 될 법이나 한 소리인가?

19년동안 피아노 앞엔 앉아본적도 없고...
머리가 어질해서..락밴드 스코어 악보도 쳐다보지 못하는 나더러...

화성학 공부에..
피아노 공부에...
시창과 청음 공부에....

헐....

그래 뭐 다 좋다 이거야...
근데...근데......

실기시험까지 남은 시간이 단지 2개월 뿐이다....

이게 뭐야!! 이게 뭐냐구!!
한마디로 학교 들어오지 말라는 말과 같은 것 아닌가?

우리밴드는 학교에서 나와 압구정동의 자주가던 카페에 앉았다.
(내 기억으론 여자애들 없이 간건 그때가 첨인듯...쳇..)

웨이터 : 주문하시겠습니까?
밴드일동 : 술...술을 줘...독한걸로...
웨이터 : 네? 낮인데..괜찮으시겠어요?
밴드일동 : 씨바 우린 지금 암흑이야..깜깜하다구!!! 술을 줘...술...

맥주를 마셨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나는 정말 기로에 섰다.
3년동안 해오던 미술을 택할 것이냐..
떨어질 것을 뻔히 알면서 2개월 남은 입시를 위해 음악공부를 할것이냐..

다른친구들과 조금은 다른 상황이었던 것이다.
(다른녀석들은 그래도 악보도 볼 줄 알고 피아노도 다뤄봤던 놈들이다..)

결국 우린 합의를 봤다.
남은기간 최선을 다하자.
우리는 전국제패를 했던 밴드가 아닌가? 힘을 내자..

뭐 대충 이런말이 오간것 같다.

집에 돌아와서 곰곰히 생각하다가 부모님께 말씀 드렸다.

"여차저차해서 음악공부를 해야 할것 같습니다."
"미대는 어쩌고?"
"시험은 일단 보겠습니다."
"알았다. 뭐가 필요한거냐?"
"피아노와 레슨비가 필요합니다"
"중간에 포기할 작정이 아니라면 지원해주마"
"감사합니다. 용돈도 좀 올려주세요"
"........................"

퍼퍼퍽!

사실...글로는 다 못할 여러가지 갈등이 부모님과 있었다.
그래도 부모님이 허락해주신것은 지난 1년간 밴드를 하면서
정말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보셨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무튼, 본격적인 입시준비에 들어갔다.
음악선생님에게 화성학과 시창,청음을 배웠으며..
피아노는 개인레슨을 했다..

가장 문제가 된것은 피아노였다.


고등학교 3학년이면..이미 손가락이 굳어서 체르니는 커녕 바이엘도 치기 힘들다.
게다가 2개월안에 체르니 30번 곡을 외워서 쳐야 한다면...
그건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그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냥 피아노와 사랑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한마디로 맨날 껴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첫번째로 내가 한일은 이웃집에 인사드리기 였다.
앞으로 시간이 없는 만큼 입시전까지는 밤이고 낮이고 계속 피아노를 쳐야만 하는데..
이웃집의 테클이 있다면...막대한 지장이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내 노래연습방식은 좀 독특해서 화장실에서 연습해야
잘 외워지고 잘 불러진다..

방음안되는 빌라에서 사시는 분들은 다 알겠지만..
화장실에 가만 앉아있으면 이웃집 화장실 물내리는 소리에 힘주는 소리도 다 들린다.

그래서 한 일이 바로 케이크를 하나씩 사들고 아랫집, 옆집에 인사를 한 것이다.

" 저 이번에 학교 가야합니다. 마음잡고 공부하려 합니다. 2개월간은 많이 시끄러우실 겁니다.
너그럽게 용서해주세요. 꼭 합격해서 인사드리러 오겠습니다."

학생이 이렇게 이야기 하는데..
"닥쳐 임마! 니가 합격하던 말던 알게뭐야! 조용히 안하면 신고할테닷!"
이런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 정말 착한거다..)

아무튼, 그렇게 난 꼬박 2개월을 죽을둥 살둥 매달렸다.
밥도 피아노위에서 먹고, 화성학 공부도 피아노 위에서 했다.
피아노와 친해져야 했기 때문에 어쩔수 없었다.

1개월간 바이엘 상,하권을 전부 쳤다.
(바이엘 하권은 뒤에가면 어렵다. 사실 좀 건너뛴 곡도 있다..^^;;)

그리고 소나티네 한곡 쳐보고 바로 체르니로 넘어갔다.
믿기지 않겠지만...
2곡 치고 시간이 남았다.

지금은 그 당시처럼 눈에 악보가 안들어오지만..
그 땐 정말 악보보면 살짝 절기는 해도 바로 바로 연주가 가능했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인간은 역시 궁지에 몰리면 초능력을 발휘한다는...)



날 가르치던 레슨선생 (이래봤자 한살 많은 누나였지만..)이
내 생전 너같은 독종은 첨봤다고 이야기 할 정도였으니...말해 무엇하리..

어쨌거나 시간은 흘렀고 드디어 실기시험이 시작 되었다.

To be Continue...



Posted by 선종욱
,
몇회에 걸쳐 제가 서울예대 실용음악과에 진학하게된 동기와 실기경험담등을 올려드릴 생각 입니다.
요즘 한참 입시준비에 여념 없으실텐데..(몇몇 학교는 이미 실기 들어갔고!)
조금의 도움이라도 될 수 있다면 좋겠군요.

그럼 본문으로 고고싱!

[지금까지의 줄거리]

허접하고 양아스런 미대지망생 종욱은
운명처럼 기타소년을 만나게되고
진정한 메틀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

고등학교를 마칠무렵 그의 운명을 좌우할
커다란 이벤트를 맞이하게 되는데......


My Story 2

10월 마지막주 어느날
우리밴드 (밴드이름은 Action4;;; 졸라 유치했음..)는
동랑예술제 예선에 참가했다.

이쯤에서 그당시 울학교 밴드연습사진 공개를....
옆에서 베이스치던 넘은 "낙타" 라고 꽤 친하던! 지금은 사운드 엔지니어죠.^^
↑↑↑ 보시라 이 알흠답던 사내들을! (스노우진 완전 쩌네..;;;)

연주했던 곡은 Loudness의 So Lonley.


2번째로 연주하게 되어서 사실 좀 떨렸으나..
그럭저럭 잘해낸 모양이다.
예선은 무난히 통과했고 본선에 진출했다.
본선 참가밴드는 총 12개밴드 개별 참가자 13명 정도였다.

드디어 운명의 11월 9일(날짜가 확실히 기억은 안남..) 토요일
본선이 서울예전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열렸다.

우리가 준비한 본선곡은 그당시 한참 인기있던
티삼스의 "매일매일 기다려" 란 노래였다.


원래는 영어권 노래를 준비하려 했으나..
우리 기타치는 넘의 강력한 테클로 정하게 된 노래였다.

그녀석 말로는 학생이 학생처럼 보이는게 점수를 따는데 더 유리하다나 뭐라나?

아 씨바..그럼 Van Halen 이나 Dokken 같은 밴드노래를 연주하면 학생처럼 안보인다는거냐?
말도안되는 소리...
암튼 리더는 그녀석이었으니..
(뭐 그당시엔 먹을것 많이 사주고 그러면 리더시켜주는 아름다운 풍습이 존재했었다! 푸훗..)
그냥 넘어갔다.

참가한 밴드의 실력은 백중세였다.

어느 여학교는 하이웨이 스타를 밴드부 Brass까지 불러서 함께 연주했고..
엽기적이게도 음악선생님풍의 한 사나이가 지휘를 하고 있었다...
말이 되나? 하이웨이 스타 를 지휘하고 있는 꼬락서니라니....
세상에...


원래는 재학생들만 참가 가능했지만...
한명만 재학생이고 나머지는 재수생들인 밴드도 있었다.
(이봐! 엄연한 반칙이라구!!!)

어느 허약한 밴드는 건아들의 "젊은미소"를 들고 나오기도 했다.
다들 말은 안했지만..서로들 비웃고 있었을게다..


결국 결과는 대상이었다. 쉽게 이야기하면 짱먹었다.
박수도 제일 많이 받았고..(그럴만도 하지..데이빗 리 로스 흉내냈었걸랑..풋..)

지금은 고인이 되신 길옥윤 선생님이 당시 학과장님이셨는데..
우리밴드에 대해 본인의 어린시절 생각난다고 하셨던게 참 기억에 많이 남는다.

어쨌거나 우린 승리했고...
우리 담임선생님 이번에도 빠지지 않고 응원 오셨고...
대상 받자마자 기립박수 보내주셨고..

응원온 친구들 한 30 여명 모두를 끌고 호프집에 가셨으니..
참으로 용감한 선생님이셨다.

"어차피 너희들끼리 냅둬도 술집 갈테고, 없는 돈에 궁상떨다 사고칠지 모르니..
차라리 내가 쏠께 쌤이랑 가자" 라고 말씀 하셨다는...
허허 이 선생님 진짜 멋지죠? ^^

그날 우린 진심으로 기뻐하는 선생님과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하루를 보내었다.
그렇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월요일 등교하며 우린 모두 경악하고 말았다.
교문에 걸린 현수막

"경축! 본교밴드 Action4 전국제패! "

허걱...이게 무슨 황당무계한 스토리인가?
아무리 개교이래 외부에서 상장하나 들고온일 없는 구린학교 라고해도 그렇지...
일개 고딩밴드 하나가 뭐가 대단하다고......

놀라운 것은 그뿐이 아니다.
우리를 위해 학교차원에서 준비된 이벤트를 열거하자면
다음과 같다.

1. 교장실 방문 담소나누기.

- 씨바! 생천처음 영지천 먹어봤다. 내놓을게 그리 없던가 교장! 더군다나 어울리지 않는 쵸코파이라니...

2. 이사장 방문

- 우리학교는 기독교학교였고 외국인이 설립한 학교였다.
아일라 깁스 라는 미국인 할머니가 이사장이었고 학교내 사택에서 살고 있었다.
이 할머니 심장이 안좋아서 송아지 심장을 달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집에 갔더니 껍질도 안깎은 사과와 오이를 내놓았다.

우리는 송아지 여물을 내놓지 않은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라며
사과의 씨까지 전부 씹어먹었다.
(남기면 혼난다. 미국인들은 원래 통째로 다먹는다 하더라..)
오이는 남겼다..진작 문희준군을 알았더라면 데려가는 거였는데...
- 개인적으로 문희준군의 마인드를 정말 좋아하니 욕하지 마세용!

3. 학생주임과의 면담.

- 밴드한다고 구박할땐 언제고...
갑자기 생글거리며..악수하자던 그 꼬락서니라니..
학생주임 책상 서랍엔 뭐가 들었을까 늘 궁금했는데..
새우깡이 들어있었다. (누가 먹어 눅눅한 새우깡따위...-_-;;)

4. 방송부에서의 인터뷰

- 그렇게 점심시간에 메틀리카 틀어 달라고 해도
양수경만 틀던 쉐이가..
왠일로 듣고싶은거 말하라고 하더라...
그래서 슬레이어 테이프를 살짝 건네줬다.
점심시간이 되어서 슬레이어의 War Ensemble 이나왔는데..


딱 20초 정도 나오다가 바로 박남정의 "사랑의 불시착" 으로
바뀌더라...나쁜넘..

5. 권력의 향연

- 점심시간에 밥먹고 잔디밭에 누워서 담배를 피우는데..
갑자기 수학선생이 나타났다. 헉!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나려니까..
"이자식...노래한다는 놈이 담배 피우면 되냐?" 이런다...
그리고 한마디 "불조심..."
헉...이럴수가 있나...이럴수가 있나...
바로 2주전 걸렸을땐 후배들 보는 앞에서
가오 안살게 열라 맞았는데...

진정 그때 느꼈다. 인기있는 락커의 삶이란 이런것이로구나..

우리는 모두 학교에 그냥 입학한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애초에 광고하면서 입학특전이 있다 했으니...

밴드 4명 모두 특별전형으로 합격할테고
우린 끝까지 같은 밴드로 갈수있다라며...정말 기뻐 했었다.

그러나....
며칠 뒤 서울예전 실용음악과에서 날아온 소식은
우리의 뒷통수를 10 t 짜리 망치로 후려 갈겼으니...
그것은 바로.....

To Be Continue...


Posted by 선종욱
,
몇회에 걸쳐 제가 서울예대 실용음악과에 진학하게된 동기와 실기경험담등을 올려드릴 생각 입니다.
요즘 한참 입시준비에 여념 없으실텐데..(몇몇 학교는 이미 실기 들어갔고!)
조금의 도움이라도 될 수 있다면 좋겠군요.

그럼 본문으로 고고싱!


: 리얼한 시대상을 반영하기 위한 장치로 그당시 닭장(나이트클럽)에서 유행하던 음악들 첨부!

1987년 고등학교 2학년
미술을 전공하기 위해 화실을 한참 다니고 있을 때였다.

↑↑↑ 요랬다! 고3의 포스가 느껴지시는가? 큭!

왜 그런거 있지 않은가?
수업시간이 좀 지루해지면..
애들 앞으로 내보내서 장기자랑이라고 노래 시키고 그러는거...

그때 한참 유행하던 노래가 바로 대학가요제에서 상을 받았던
어우러기의 "밤에 피는 장미" 라는 노래였다.

메인보컬이 여자라서 키가 상당히 높은 노래였는데..
음악점수라고는 늘 60점대를 받던 내가..
음이 높은지 알게뭔가?
그냥 불러 제꼈다. (무서운 것도 없던 시절이었으니..)

그걸 옆반의 기타치던 친구가 들었던 모양이다.
쉬는시간에 우리반에 놀러왔다.
"니가 종욱이냐?" (뭐야 이자식 시비거는거야?)
"그렇다!"
"아까 들으니까..노래 잘하던데 밴드 하고싶은 생각없냐?"
"조까!"
"헉......"

그렇다. 난 양아치였던거다.
밴드 따위는 관심밖이었다.

뭐 시나위라던가 백두산이라던가..
그당시 한참 뜨던 헤비메틀 밴드가 멋있어 보이긴 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나와는 상관없는 세계였다.

"암튼 생각있으면 왕십리에서 합주하니까 와라~"
"됐어! 꺼져!"

"헉........." (이놈도 좀 노는놈이었지만...맛이갔을거다..^^)
그런식으로 대응하는게 멋진걸로 인식되던 시절이었으니...
나란 놈도 참 트랜드에 상당히 민감하던 놈이었나보다...

어쨌거나...그냥 그녀석의 말따위는 씹어버렸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3학년...
스쿨버스를 타고 다니던 나는 거의 제일먼저 버스에 타는 편이었다.
덕분에 기사랑 친해져서 늘 내가 원하는 음악을 들으며 등교 할 수가 있었다.
(물론, 뒷자리에서 담배 피우며 들었다.....말했잖아...양아치였다고..)

어느날인가는 신데렐라를 틀어놓고 버스에서 졸고 있었다.
이윽고 학교에 도착해서 테잎을 빼내려는데..
어떤녀석이 말을 붙인다.

"야! 너도 신데렐라 좋아하냐?"
"뭐야 넌?" (내가 생각해도 참 싸가지 없었다...)
"나는 이승재다. 저번에 봤잖아~"

그렇다. 작년에 기타친다며 깝쭉대던 그넘이다.

예체능을 지원했던 나는 학교에서 따로 예체능반을

운영했던 덕분에 이녀석과 같은 반이 되었다.

그런 인연으로 음악하는 넘들이랑 많이 친해졌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취미가 같다는 의미였다.

내 인생을 음악에 바치겠다는 생각 따윈 애초에 없었다는 말이다.

그러다가 어느순간엔가 나보다 노래 잘하는 놈이 학교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부분에선 좀 잘난척할거다...후훗)

그당시 가장 인기있던 밴드가 스트라이퍼(Stryper)와 헬로윈(Helloween)이었는데..
내 목소리가 워낙 고음이다보니...
똑같이 카피가 가능했던 거였다.
(뭐 고딩때야 카피곡 잘하면 지존아닌가? ^^)

암튼 그런 점들 때문에 밴드를 하게 되었다.
다른 멤버들도 어린나이 답지 않게 전부 실력들이 있었기 때문에..
근처 학교들 사이에선 이름이 많이 알려진 편이었다.

여름방학이 되었다.
그 당시 락밴드들의 메카는 종로 파고다 공연장이었다.

우리와 동시대를 살았던 락키드들이나...음악인들은
이 공연장 잘알고 있을 것이다.
(하다못해 부활 1집의 김태원씨 사진 배경도 파고다 극장 아니던가? ^^;;;)

티켓을 팔아서 우린 공연을 했다.
뭐 집안잔치긴 했지만...
그래도 학교 운동장이나 체육관이 아닌 처음으로 무대다운 무대에 선것이다.
연주한 곡들은

Like Hell. Breakin' the Raw. Somebody Save me. Push Push...

전부 기억은 나지 않고 대충 이정도만 기억 난다.

담임선생님이신 봉인근 선생님도 와주셨다.
(이분은 정말 내가 존경하는 몇분 안되는 쌤중의 한분이다.)

정말 즐겁게 공연했고...뒤풀이도 재미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명동의 스타월드로 뒤풀이 갔었다.

(당근 나이트지~ 말했잖아~ 날라리였다고...ㅋㅎㅎ)

시간은 흘러서 졸업즈음이 되었다.

10월 중간고사를 볼때....
어느 친구가 신문을 한장 들고왔다.

"야 이거봤냐? 서울예전에서 동랑예술제라는걸 하는데...입상하면 그냥 입학이래!!"

귀가 번쩍 뜨이는 소식이었다.
한참 락에 빠져서 허우적대던 나에게 대학에서 진짜 락커가 되는 길을 배운다는 것은..

이를테면 은총 같은 거였다.

그래 미술따위....
3년의 시간과 레슨비가 아깝지만..

음악이 좋은 걸 어떡해...

담임선생님에게 상의를 드렸다.
선생님은 너희들이 원하는게 음악이고 밴드로서 성공을 원하니...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충분히 도와주겠다 라고 말씀 하셨다.

시험이 끝나는 날부터...
예선이 있는 날까지...약 3주간 동안...
매일 4교시만 끝내고 우린 합주실로 향했다.
(조퇴처리도 안해주셨다...그냥 학교 계속 나온걸로 되었다! 쌤짱!!!)

그리고 대망의 예선날이 되었다.


To be Continue..

Posted by 선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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